우리가 좀 더 성숙한 신앙의 길에 들어서면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이때부터 고민이 시작됩니다. 말씀이 옳은 줄 알겠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분명한데, 아무리 애를 써도 말씀대로 살아지지 않습니다. 전에는 환경, 조건, 상황이 어렵고 힘들어서 내가 불행한 줄 알았는데, 그러나 주님을 알아갈수록, 내 자신이 말씀의 빛 가운데 드러날수록 상황과 조건과 아무 상관없이 결국 문제는 나 자신, 자아(自我)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결론에 다다른 사람이 시작하는 일이 ‘자아 길들이기’와 ‘자아 죽이기’입니다.
여기 그런 사람이 십자가 앞에 서 있습니다. 자신의 ‘자아’ 때문에 온전히 주님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 사람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처럼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결심합니다.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하게 하는 이놈의 자아를 죽여야 되겠다. 오직 원수는 바로 내 자아다!”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기로 결단하며 내 발부터 “탕!”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어떤 자아의 몸부림도 허용하지 않고 자기를 포기하고,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습니다. 사심이 사라지니 객관적으로 문제가 보이고, 정확히 사리 분별이 됩니다. 밝은 눈으로 보니 하나님의 뜻이 보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회개를 촉구하게 됩니다. 광야에서 홀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됩니다. 그러다 문득 깨닫습니다. “내가 또 무슨 짓을 하나. 여전히 ‘내’가 살아서 난리를 치는구나. 나를 마저 못 박아야겠다.” 그러나 두 발과 한쪽 손을 차례차례 못 박아도, 남아 있는 다른 한쪽 손은 스스로 못 박을 수가 없습니다. 거의 죽었지만, 완전히 죽지 않은 자아는 십자가에 매달린 채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자아 죽이기’마저 불가능한 것을 깨닫습니다. 자,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요?
십자가는 이미 2000년 전에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죽었다고 선언합니다. 내 안에 시퍼런 자아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된 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이 진리에 온전한 믿음으로 화합한 자는 더 이상 자아를 죽이지 않고, 예수의 생명으로 삽니다. [복음기도신문]
복음을 영화롭게 하라
(김용의.규장.2017)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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