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목사 이야기(11)
1. ‘별들의 전쟁’ 같은 공군중앙교회
내가 공군중앙교회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은 ‘별들의 전쟁’이다. 왜냐하면 이곳은 국방부와 한미연합사령부에 근무하는 장군들과 장군 진급을 앞둔 대령들 가운데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소령과 중령은 민간인 교회로 따지면 갓 교회에 온 신자이거나 서리집사 정도로 느껴진다. 게다가 예비역 공군 장성(將星)까지 다수의 분들이 이곳으로 출석한다.
이런 곳에 내가 대위 계급을 달고 담임목사로 오게 되었다. 부담스럽고 다리가 후들거릴 일이었다. 첫 주 예배를 드리고 운영위원회가 열렸다. 군종감실에서 어떤 행사 때문에 각 비행단급 교회에서 얼마씩 돈을 갹출(醵出)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못하겠다고 반대하는 분들이 계셨다.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한참 갑론을박 하다가 내가 그랬다. “아니 그러면 민간 교회 목사 데려다가 놓으시지 군목을 데려다가 놓고 군종감실 행정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저는 어떡합니까?” 그렇게 말은 했지만, 그때부터 마음은 심한 공격에 시달렸다. ‘난 이제 죽었다. 끝났다.’ 고 생각했다. 비행단에서 단장님 한 분이 아니라 모두가 다 장군이고 게다가 예비역 장군들까지 모여 있는 이곳에서 눈밖에 날 행동을 했으니, 내 군생활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잠을 잘 못 잤다. 다가올 ‘대 환란’이 눈앞에 어른거리는데 어떻게 잠을 잘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 주 중에 묘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장로님들이 새로 온 목사를 괜찮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이유는 자기들 앞에서 목사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공군중앙교회에서 목회하는 것이 순풍에 돛을 단것처럼 그냥 확 풀렸다. 별을 단 장로님들이 내가 말하는 것을 거의 다 들어주셨다.
2. 설교로 인정 받는 목사가 되기 위하여
그러나 목사는 배짱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것은 목사의 본 임무인 설교였다. 이전에 군산 지휘관으로 계시다가 나중에 기무부대 부사령관으로 가신 집사님에게 ‘장군은 제너럴(General)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공군중앙교회 출석 성도들은 한마디로 산전수전 다 겪으신 분들일 뿐만 아니라 공중전까지 경험하신 분들이다. 이분들에게 설교를 인정받고 감동을 주려면 어떤 설교를 해야할까.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로 다양한 전문분야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그런 설교를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총신대학 학부 때부터 인문학과 신학대학원에서는 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공군중앙교회 오기까지 5년 동안 군목을 하면서 부대 업무와 책 읽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이 모든 것이 이제 설교로 열매를 맺을 때가 되었다. 학부 때 했던 연극, 복음성가를 작곡하여 직접 노래하여 수상한 경험을 최대로 발휘해 말씀을 준비했다.
게다가 공군중앙교회의 음향시설은 참 좋았다. 설교자의 음성을 아주 듣기 좋은 소리로 본당 전체에 울려 퍼지게 했다. 더욱이 성가대에는 음악을 전공한 집사님들이 많았다. 어디 내놓아도 빠질 것이 없었다. 설교원고를 쓰고, 다듬고, 미리 읽어보고, 소리 내서 연습해보고, 토씨하나 틀리지 않도록 정교하게 다듬었다. 이렇게 몇 개월이 지나니까 내가 볼 때는 정말 군더더기 하나 없는 설교원고와 설교가 완성되었다. 나중엔 교인들이 설교테이프를 녹음해서 가져가는 이적도 나타났다. 어떻든 공군중앙교회에서 ‘개 발에 땀나듯’ 열심을 다했다. 개 발에는 땀이 안 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개발에 땀이 날 정도로 했으니, 얼마나 열심을 다했을까 싶다. 그래도 주님의 은혜다.
3. 장례 전문 목사
특히 내가 공군중앙교회에서 특히 발전한 것이 있었는데 장례예배 집례였다. 교회에는 장로, 권사 직분자가 많았는데 이들의 부모님 상이 적지 않았다. 그러면 내가 장례를 치러야 했다. 한 번 초상이 나면 임종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 위로예배 등 해서 4-5차례에 걸쳐 예배를 드렸다. 그러면 설교가 아주 힘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교인의 부모를 직접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말씀으로 위로해야할지 난감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초상이 났다는 말을 들으면 교인에 관련된 기록들을 보고 또 전화의 대화를 통해 돌아가신 분에 대한 것을 유가족들로부터 파악한 후 잠시 묵상을 한다. 그러면 내가 학부 때 익혔던 연극에서 감정이입의 방법이 떠올랐다. 그런 시간을 통해 ‘돌아가신 분이 어떤 분이실까?’를 추정해 봤다.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대체로 부모의 특징은 그들의 자녀인 현재 교인들과 연관되어 있다. 때문에 내가 교인에게서 느끼는 것과 수집된 정보를 통해 고인이 어떤 분이신지를 짐작해봤다. 그리고 주님께 이 장례에서 전해야 할 말씀을 청한다. 그러면 장례 예배에서 설교할 윤곽이 나왔다.
장례 예배 전체에서 내가 항상 중요한 목표로 삼는 것 중의 하나는 장례에 참석한 믿지 않는 친척들과 지인들이다. 나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기독교 신앙의 거룩함과 신비, 그리고 논리적이면서도 따뜻한 설교로 느껴지도록 준비했다. 그러자 교인 중의 한 분은 나보고 우스갯소리로 기독교 장례전문 회사를 하나 차리자고 이야기할 정도로 은혜가 충만했다.
4. 병사들 전도를 위한 「과학신학」
「과학신학」은 내가 군산비행단에 있었던 1993년부터 병사들을 전도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전도를 위한 글이었다. 총신대학을 다닐 때에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읽었다. 그 내용도 내게 깊은 영향을 끼쳤지만 무엇보다 작가가 소설을 쓰기 위해 100권의 신학 책을 읽고 썼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소설가도 사람들에게 자신의 글을 읽히기 위하여 100권의 책을 읽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진리를 다룬다는 사람들이 그보다 못해서야 되겠나 싶었다.
지금은 과학이 진리로 여겨지는 시대이니 과학책을 읽고 과학의 입장에서 하나님과 그의 말씀이 진리임을 밝히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고대 로마제국시대에는 헬라철학이 오늘날의 과학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신학자들이 철학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증거 하는 변증학(Apologetics; 弁証学)이 발전했다. 마차가지로 과학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증거 하는 것이 험증학(Evidences of Christianity; 驗證學) 이다.
나는 험증학의 차원에서 「과학신학」을 썼다. 1993년부터 써서 병사들에게 전도할 때에 사용했다. 1995년 예천 비행단에서 조종사들에게 정훈장교들이 하듯이 좋은 말 해주는 시간이 있었다. 말은 인격지도와 같은 것인데 사실 병사들에게나 사용될 설교 같은 말은 영외근무자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개 좋은 덕담을 해주는 것이 관례이다. 나는 그 시간에 내가 쓴 「과학신학」의 일부 내용을 말했다. 때로는 격론이 벌어졌다. 목사가 하는 말을 ‘예, 예, 좋은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내가 전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과 과학적 세계관으로 무장되어 있는 그들의 생각을 쪼개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 조종사가 격렬하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날 덕담은 변론으로 끝맺기도 했다.
최근에 나는 「과학신학」을 더 쓰고 있다. 왜냐하면 이전의 과학은 과학자들이 다루었다. 그런데 히브리 대학의 유발 하라리(Yuval Harari)교수는 인문학 전공이면서도 그 안에 무신론, 진화론으로 인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가 쓴 「사피엔스」(Sapiens)는 일반 과학자들이 끼치는 영향보다 훨씬 강하다. 과학자들이 쓴 글은 전문적인 용어들을 사용해서 일반 대중들은 그들이 말하는 과학적 세계를 그냥 믿는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인간 역사에 대한 설명에서 무신론과 진화론을 나름의 논리로 펼친 인문학자인 유발 하라리가 끼친 영향은 일반대중으로 하여금 그의 논리방식으로 무신론과 진화론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바, 이는 교육의 원리 때문이다.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이고 배우는 것이 가르치는 것’이다. 먼저 배우는 것이 가르친다는 말은 아주 극단적인 예를 들면 소크라테스(Socrates) 방식이다. 그는 질문을 했고 답을 하는 사람은 답을 하면서 깨닫는다. 가르치는 것이 배운다는 것은 가르침이 곧 배운 것을 확고히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일 배운 것을 가르치게 되면 그 지식은 그 사람의 가치관, 세계관, 인생관으로 굳어지기 쉽다. 사람들이 유발 하라리의 말로 무신론과 진화론을 가르칠 수 있게 되면 가르침을 해본 사람의 뇌는 거의 고착화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이신 주님의 말씀을 전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무신론과 진화론 그리고 인간이 신(神)이 되는 ‘호모데우스’(HomoDeus) 의식이 유발 하라리의 글을 통해 마치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처럼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기독교는 이것을 막아낼 수 있는 변증과 험증의 힘이 있어야 한다.
5. 니그렌의 아가페와 에로스(Anders Nygren,s Agape and Eros)
니그렌(Anders Nygren)의 「아가페와 에로스」(Agape and Eros)는 내가 읽어본 신학 책 중에서 지금까지도 깊은 인상을 준다. 아가페와 에로스라는 단어 자체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인간의 성애(性愛)를 대비시키는 것으로 일단 흥미롭다. 그런데 니그렌은 에로스라는 단어가 성(性)적인 사랑이 아니라 인간이 최고로 높이 올라가려는 욕망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아가페는 하나님의 사랑처럼 하향적 사랑이고 에로스는 인간이 최고로 높이 올라가려는 상향적 욕망을 뜻한다.
쉽게 말하면 인간은 정점(頂點)을 찍고 하강(下降)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정점을 찍을 때까지 상승하고 그 다음은 하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강을 대개의 사람들은 슬퍼한다. 그런데 기독교인은 그 하강이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드러내고 표현하고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사실은 그 하강으로 보이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더 높은 상승이고 시공(時空)에서 영원을 향한 진행이다. 이것을 깨달으면 중생(重生)의 완성이다. 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아주 멋드러진 문장이 되었다. 더 진도 나갈 이유는 없는듯 싶다. 괜히 나의 지식의 밑천이 드러나니 살짝 여기서 멈춰야 내가 뭐 좀 더 있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겠다. ^^
이때 이해를 돕기 위해 착안(着眼)한 말이 있다. 사람이 젊어서는 검은 머리이다. 검다는 것은 다 빨아들이는 것이다. 가지려고 하고 높아지려고 하고 등등. 그런데 늙어 가면 흰 머리가 된다. 희다는 것은 다 내놓는 것이다. 젊어서 가진 것을 하나 둘 내놓고 죽을 때는 아무 것도 가져가지 않는다. 인생이란 잘 갖고 잘 내놓는 것이다. 그런데 늙어서도 잘 내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흰 머리를 검은 머리로 염색하고 계속 더 가지려고만 한다. 이러면 인생 끝까지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죽는다. 예뻐 보이고 멋있어 보이려고 하는 염색은 무죄. ^^ [복음기도신문]
조용선 선교사 | GMS(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선교회) 소속으로 중국에서 사역 중 추방된 이후 인터넷을 활용한 중국 선교를 계속 감당하고 있으며 세계선교신학원에서 신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출처를 기재하고 사용하세요.> 제보 및 문의:
[관련기사]
[조용선 칼럼] <공군 목사이야기 10> 만남, 기도, 추억
[조용선 칼럼] <공군 목사 이야기 9> 냉커피가 떨어지자 그 병사는 주저앉아 울었다
[조용선 칼럼] <공군 목사 이야기 8> 기억나는 성도, 기억되는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