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호 / 일상에서 만난 하나님]
치과 치료를 시작한 지 벌써 2달째가 되었다. 20년 전 씌운 크라운을 벗겨내고 다시 씌우는 작업을 하는 시간이 참 더디게 지나간다. 성질 급한 내게 오랜 치료의 과정을 겪는 시간 동안 인내를 배우게 하신다.
신경세포들을 하나하나 찾아내고 치료하느라 많은 시간이 들었다. 어렵게 한쪽 신경 치료를 마치고 또 다른 치아를 열어보니 그 역시 많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선생님은 조금만 더 늦었으면 이쪽도 신경치료를 할 뻔했다고 하신다. 그렇게 크라운 안에서는 썩어 들어가고 있는데 반응은 무감각하다. 고기도 먹고 밥도 먹고 모든 것을 먹었다. 열어보기 전까지는 속의 상태를 알 수 없다. 치아를 덮고 있는 크라운은 어떻게 보면 무서운 회칠한 무덤 같은 덮개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평소에는 자신의 실체를 알 수 없어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으니 무감각한 채 회개도 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다가 심판의 자리에서 자신의 죄인 된 모습을 대면하고 후회하며 비참한 인생을 마감하는 것과 같다.
심판 전에 복음을 알고 회개하며 말씀 앞에 서게 하시니 감사하다. 방학 내내 치료 침대에 누워 많은 생각을 했다. 내 안에 뿌리 뽑고 처리되어야 할 가나안 족속들, 음란과 부정과 악한 정욕과 탐심들, 파고 드러내고 뽑아내도 또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내 옛 생명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시는 시간이었다. 성령의 빛만이 드러내고 뽑을 수 있다.
사탄의 속임은 곪아 썩어가고 있음에도 크라운이라는 허울 좋은 덮개 하나 씌워 놓고 ‘괜찮다. 안전하다.’고 속인다. 시간이 지나니 곪아터진 자리에서 악취가 풍겨 나온다. 그렇게 오늘 이 시간에도 사탄의 간계는 한 사람 한 사람들을 어둠 가운데 몰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치아 신경 치료뿐 아니라, 한 영혼이 주님을 알고 복음을 알아듣게 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깨닫는다. 치료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주님이 내게 허락하신 복음의 여정을 돌아보게 되었다. 총체적인 복음을 접한 후 참 더디게 복음을 알아들었다.
많이 넘어지고, 많이 엎어지고, 많이 주저앉아 씨름하는 시간을 지나왔다. 안 되는 내게 절망하고, 엎어지는 나로 인해 괴로워했던 시간, 지식으로 동의했던 진리들이 몸으로 알아지기까지의 시간은 혹독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시간이 너무나도 감사하다. 몸으로 깨지고 엎어지는 시간을 지나고 나니 하나님의 십자가로 구속해주신 사랑이 어떤 농도였는지 알게 되었다. 주저앉아 울며 배운 복음의 진리로 인해 지체들을 향한 긍휼한 마음이 부어지게 하셨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사람으로 행할 수 없는 사랑, 나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사랑, 이 모든 사랑이 주님으로 비롯됨을 알게 하신다. 나는 할 수 없지만 내 안에 계신 주님은 하신다. 오늘도 실수하고 넘어지는 시간을 통해 주님은 말씀하신다. 몸으로 배워 알게 하신다. 머리로 아는 진리는 복음의 괴물을 만들어가지만 엎어지고 넘어져 눈물 훔치며 배운 진리는 몸에 새겨져 십자가로 일어날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더 주님을 사랑하고 싶다. 더 이웃을 사랑하는 자리, 기도의 자리에서 두 계명의 진리를 더욱 붙들게 된다. ‘주님은 사랑이시라’ [복음기도신문]
김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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