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살아계셔서 지금 저에게도 고난이 있는 거예요”

예수님을 따라가는 최현식 형제(중국 북경대학 의학부)

[210호 / 인터뷰]

17살에 복음을 만나고, 주님께 ‘나도 써달라’며 기도하다 거리에서 만난 중국 노숙인들을 섬기고 팔과 다리가 없는 보육원 아이들과 함께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으며, 믿음의 바닥을 쳤지만 주님은 결국 영광을 받으셨다. 1996년생, 올해 24살의 청년이 주님께 올려드리는 고백을 들어본다.

– 어떻게 복음을 만나고 변화했나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교회에서 자랐어요. 엄마가 교회에 열심이어서 저도 열심이었죠. 찬양리더, 인도자, 섬김이…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섬겼어요. 성경도 열 몇 번 읽었지만, 정작 복음이 무엇인지 몰랐어요. 그러다 어머니를 통해 고1때 공연예술로 복음을 섬기는 한 단체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복음학교에 갔어요. 그때 십자가 복음은 충격이었어요. 뭔가 다른, 들어보지 못했던 말씀 같았어요. 그런데 다음번 섬김이로 참여하면서 마음에 부딪힘이 있었어요. 저는 2006년에 중국에 가서 12살 때부터 ‘절강성(浙江省)’이라는 지역에서 동생과 함께 외삼촌댁에서 유학중이었어요. 어머니께서 선교를 생각하고 준비시키신 것이었죠. 그런데 저는 교회에서는 신실한 척했지만 학교에서는 수업도 잘 안 들어가고, PC방 다니고, 아이들과 싸우고 도둑질도 했어요. 고등학교 때 친구를 때려서 기절시켰는데 감추기 위해 또 거짓말을 하기도 했어요. 교회 안팎에서 인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주님이 그런 제 이중적인 모습을 밝히 비춰주셨어요. 그리고 그런 저를 주님이 사랑한다고 하셨죠. ‘나 같은 놈을 왜 사랑하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네가 그런 사람이라서 너를 더 사랑한다.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이 불타오르듯 한다. 절대로 너를 포기하지 않겠다.’ 하나님이 제 마음에 그렇게 말씀해 주셨어요. 이후 선교사의 삶을 살고 싶다고 결정했어요. 주님께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기도하던 중 중국에서 의료선교사님을 만나게 됐어요. 그분처럼 주님을 증거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의료 쪽으로 진로를 결정했고, 2015년 9월 북경대 의학부에 입학했어요. 중국에서 한국인에게 의사자격증을 준 것은 1년 정도 되었어요. 이전에는 불가했죠.”

17, 주님을 만나다

“13억 중에 500명 정도 들어가는 북경대 의학부에 통과할 거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주님이 부르셨으니 해보자는 마음이었어요. 저는 사실 머리가 정말 안 좋아요. 유학생으로 장점도 있기는 하지만 중·고등학교 때 워낙 공부를 안 해서 쉽지 않았죠. 의료선교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고3때 열심히 공부하긴 했지만, 주님께서 믿음으로 저를 불러 주신 거예요. 지금은 본과 4학년 2학기 휴학중이에요. 3학년 2학기부터 병원에서 실습을 하고 있어요.”

– 노숙인 사역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사실 저는 복음을 만난 후 선교사 결단을 하고 한국에 있는 기독학교에 가고 싶었어요. 입학 제한 연령이 18세까지였는데 그 길이 열리지 않으면서 제 안에 의문과 분노가 일었어요. 다시 북경에 도착해서 공부를 할 때도 선교사로 콜링 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힘들었어요. 나도 주님을 전하고 싶었어요. 주님을 만나고보니 다른 것이 정말 의미가 없었거든요. 주님께 ‘나도 좀 써주세요….’그런 기도를 하며 길을 가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벌리고 있는 노숙자가 보였어요. 저분들을 섬기면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그냥 노숙자분들을 찾아갔어요. 여름에는 차가운 것, 겨울에는 따뜻한 것을 들고요. 그러다 한 할머니가 여기 예배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때 제가 고3이었는데 마침 한국인 과외선생님이 그 노숙자 사역을 하시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선생님과 신앙적인 얘기를 시작하게 되었고 동시에 할머니의 초대로 그 예배에 가게 됐어요. 모임은 몇 년 전 외국인 선교사님이 개척해 놓은 상태였어요. 그동안 많은 청년들과 사역자들이 이 노숙자 사역을 오갔고, 제가 들어갈 당시는 함께 갔던 과외 선생님도 한국에 들어가야 하고 저만 남게 되는 상황이었죠. 저 혼자 그 사역을 계속했어요.”

노숙인들과 함께 숲에서 드리는 예배

– 혼자 그 일을 어떻게 감당했나요?

▶노숙인들과 함께 예배드리며(제공: 최현식 형제)

“저희 예배는 장소가 따로 없어요. 흙바닥에 그냥 앉아서 예배를 드려요. 지금은 7~9명 정도 예배를 드리지만, 처음에는 20명 정도 드렸어요. 그땐 저도 말씀을 전할 줄 몰라 한인교회, 중국교회 가리지 않고 찾아가 말씀과 장소를 부탁했어요. 20군데 넘게 부탁했지만 잘 되지 않았어요. 교회마다 이런 저런 사정이 있었죠. 또 노숙자들은 냄새가 엄청 나니까 다른 교인들에게 어려움을 줄 수도 있구요. 수많은 거절을 당하면서 ‘교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문턱이 높았나.’ 안타까움과 함께 분노가 생기더군요. ‘그러면 대체 말씀을 누가 전합니까?’라고 기도하는데, 주님은 제가 성경을 읽고 말씀을 나누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주일은 제가 교회에 가야하니까 토요일 아침 일찍 숲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한 주 한 주 그때마다 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눴어요. 그렇게 4년을 함께 예배드렸어요.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도움을 줬지만 이 사역을 끝까지 함께 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때도 교회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어요.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맞나?’ 게다가 중국 노숙인 어른들은 글을 읽지 못하세요. 말도 어눌하구요. 제가 복음을 나누면 저분들이 과연 알아들을까? 늘 막연한 의구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주님은 그것을 여러 사건과 열매로 저를 깨뜨리셨어요.”

로마서를 통째로 외운 노숙인 할아버지

– 어떤 열매를 보여주셨나요?

“먼저는 그 사역에서 섬김을 받던 한 노숙인 자매님이 복음을 받으시고 자신과 같은 노숙인에게 이 복음을 전하겠다며 헌신을 하는 일이 일어났어요. 그 기도와 고백을 들으면서 한 사람을 생명으로 세우시고 또 다른 자를 일으키는 주님의 복음은 생명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어요. 또 중국에서도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이라는 두 개의 큰 행사를 갖고 있어요. 한번은 성탄절 선물을 드리면서 “어르신. 주님이 태어나신 날이니까 내년에는 1년 동안 주님께 드릴 선물을 함께 준비해봐요.”라고 말씀드렸어요. 어르신들이 다들 선물을 준비하셨어요. 그런데 한 할아버지께서 자신은 아무것도 드릴 게 없다면서, 대신 한 청년에게 매일 로마서를 읽어달라고 해서 1장부터 마지막장까지 통째로 로마서를 외워오셨어요. 그리고 내내 눈물을 흘리면서 로마서를 외우셨어요. 그분 연세가 77~8세예요. 이 복음은 생명으로 전해지면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구나! 제 연약함과 말주변은 문제되지 않았어요. 주님은 살아계셨고, 지금까지 주님은 이렇게 행하고 계세요.”

믿음의 시험

– 이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노숙인들과 함께 기도하는 모습(제공: 최현식 형제)

“뜻하지 않은 믿음의 시험을 겪게 됐어요. 한동안 이들과 예배드리기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서 주춤거렸죠. 자칫하면 중국에 더 있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가야할 상황이 생기기도 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제 믿음의 밑바닥을 찍었어요. 입으로는 주님으로 충분하다고 했는데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지? 나는 이렇게 열정적으로 헌신했는데… 사람들의 조롱이 들리는 듯했어요.‘너 까불 때부터 알아봤다. 대학 나와 의사하면 앞날이 창창한데 왜 이러고 살아?’ 이런 조롱에 믿음으로 대답해주기는커녕 ‘나 정말 왜 이러고 살지?’ 제 자신도 질문에 빠져들었어요. 다행히 주님의 은혜로 일이 잘 해결됐어요. 그게 2년 전이었어요. 문제가 해결되던 날, 하늘은 쨍쨍한데 비가 왔어요. 주님이 이런 내 꼴을 보시고 우시는 것 같은 초라한 마음이 들었어요. 철저한 절망을 겪으면서 동시에 분노가 일어났어요. 그 분노는 교회로 이어졌어요. ‘어떻게 교회가 이러지?’ 사실 한 사람에 대한 분노가 교회 자체에 대한 분노로 이어진 거죠. 사탄이 주는 마음이었어요. 그 일 후에 2주간 교회에 안갔어요.”

믿음의 시험, 내 안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 주님이 어떻게 그 시간을 해결해 주셨나요?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워 성경을 보는데 주님이 억울하게 십자가로 가시는 장면이 보였어요. 얼마나 억울하셨을까… 그런데 ‘그런 주님이 내 안에 살아계시기 때문에 2000년 전에 일어난 그 일이 지금 나에게도 벌어졌구나….’하는 마음이 들면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어느새 분노가 감사로 바뀌었어요. 저를 어렵게 한 사람이 있었지만, 침묵했어요. 침묵의 또 다른 이름은 기도예요. 그리고 예배장소를 옮겼어요. 옮긴 곳은 노상이어서 추웠어요. 그래도 괜찮았어요. 오히려 예수님이 이렇게 예배를 드렸을 것 같아서 너무 행복했어요. 비록 교회는 없고 목회자도 없었지만 주님이 함께 하셨어요. 그런데 그 이후에도 두어차례 더 어려움을 겪었어요.”

“이제는 외국인인 제가 더 이상 복음을 전할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중국 현지인들이 이 사역을 감당하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후 하나님께서 중국인들과 예배하는 기회를 허락하셔서 지금은 제가 모든 사역에서 손을 떼고 중국 현지 형제자매들과 기존에 헌신을 하셨던 노숙인 자매님이 노숙인 사역을 하고 있어요. 지금은 그 노숙인 분들이 전도자 한 명을 후원해요. 주님은 인간의 방식이 아닌 당신의 뜻대로 이 모든 것을 이끄셨고, 지금도 이끌고 계세요.”

선지자. 왜 나는 노숙자여야 해?”

“노숙인 어르신들의 영혼에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한 시점이 있었어요. 저는 그분들을 할아버지, 할머니라 부르고 그분들은 저를 손주라고 부르세요. 또 중국어로 ‘현식’이라는 제 이름을 발음하면 ‘시엔즈’인데, 성조에 따라 ‘선지자’라는 뜻이 있어요. ‘선지자님’하고 저를 부르시는 게 되는 거죠. 성조를 바꿔서 불러달라고 해도 그렇게 돼버려요(웃음). 자격 없는 존재를 그렇게 불러주시는 게 감격스럽죠. 하루는 한 할아버지가 저를 찾아와서 물었어요. “시엔즈. 왜 나는 노숙자여야 해?” 왜 하나님이 자신을 노숙자로 불러주셨을까?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하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저도 하나님께 물어보겠다고 답해드렸어요. 그리고 3주를 눈물로 기도했어요.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서로 답을 주셨어요. 할아버님이 바로 ‘기도자’라는 것이었어요.”

▶노숙인들과 함께 예배드리며(제공: 최현식 형제)

<이상 210호에 게재>

– 어떻게 그런 의미가 되죠?

“사실 노숙자만큼 그 지역을 아는 사람은 없어요. 그분들은 365일 24시간 그곳에 앉아 모든 일을 보니까요. 기도의 파수꾼인 거예요. 그래서 할아버지께 하나님이 할아버지를 그곳에서 기도의 파수꾼으로 세우신 거라고 말씀드렸어요. 누구도 할아버지만큼 이곳을 잘 알지 못히요. 그러니 돌아가실 때까지 기도하기로 저와 약속하자고요. 할아버지 존재에 대한 자신감이 회복되는 시간이었죠. 그분들은 늘 존재가 찌그러져있어요. ‘당신은 하나님의 귀한 자녀에요.’라고 말해도 막상 세상에 나가보면 또 더러운 존재로 취급을 받으시니까요. 하나님은 그렇게 할아버지를 기도의 파수꾼으로 부르셨고, 그분은 지금도 계속 그 자리에서 기도하고 계세요. 이 모든 노숙인 사역과 관련된 일들이 주님이 하셨다고 밖에 고백할 수 없어요. 저는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계획도 없어요. 어떤 지식을 나눈 것도 아니고 제게 주신 말씀을 나눈 것뿐인데 주님은 제 연약함을 강함으로 바꾸고 계세요.”

– 어떻게 그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아픈 아이가 있었는데 대기번호가 길어서 병원에 못가는 그 아이를 제가 있는 병원에 데려와 수술을 하게 된 일이 계기가 되었어요. 미국인 여성분이 세우신 보육원인데 팔이 없거나 다리가 없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주님이 제게 가르쳐주신 것은 ‘전도’였어요. 그냥 가서 같이 놀아주는 거죠. 보육원에 들어가기 전 기도하고, 놀아주고, 청소, 빨래하고 나와요. 그러면 믿는 분이든 믿지 않는 분이든 제게 물어요. “왜 이걸 해요?” 그래서 알게 됐어요. 아! 이게 전도구나. 저는 말이 어눌하니까 이런 방법을 주시는 것 같아요. 그들이 먼저 물어보니까 나누게되는 거죠. 일본인, 인도네시아인, 중국인… 믿든 믿지 않는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묻는 이들에게 복음을 나눠요.”

. 나는 왜 팔이 없어요?”

– 그곳에서는 어떤 아이들을 만났나요?

“그곳에 7살 남자 아이가 있는데 “형. 나는 왜 팔이 없어요?”라고 물었어요. 그 아이는 왼쪽 팔이 없이 태어났고 오른쪽 팔도 조금밖에 자라지 않은 아이였어요. 같이 기도해보자고 말하고 한동안 기도를 계속했을 때 주님은 제게 실제 된 복음을 나누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사실 저는 오른쪽 청력이 거의 없어요. 비행기가 가까이 지나가도 잘 모를 정도로 거의 청력이 없는 상태에요. 전에 귀가 들리지 않는 청년에게 복음을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저의 예배와 찬양 이야기를 나눌 때 청년의 마음이 열린 일이 기억났어요. 저는 기타, 피아노, 베이스, 드럼…악기를 조금씩 다루는데요, 찬양팀이 없는 곳에 가서 예배를 드려요. 그런데 악기를 다루는 사람이 청력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잖아요. 그 나의 약함을 주님께 내려놓은 이야기를 들려주자 청년이 말했어요. ‘너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어?’ 그때 나는 한쪽으로라도 듣는데 형제님은 얼마나 힘드시겠냐고 같이 부둥켜안고 울며 위로를 전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 이야기를 아이에게 나눴어요. 그리고 말했죠. 너도 그것으로 누군가에게 은혜를 나누게 될 거라고.

누군가 너에게 ‘어떻게 그렇게 찬양할 수 있어?’라고 물을 때 너는 말할 수 있을 거라고요. 그리고 우리 더 기쁘게 찬양하자고 말했어요. 아이는 손이 없으니 두 발로 박수를 쳐요. 그리고 하루는 어떤 청년이 보육원 사역에 참여하다가 그 아이의 모습을 봤어요. 그리고 말했죠. “저 아이는 어떻게 저렇게 찬양할 수 있을까?” 그때 제 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주님이 그 아이를 이렇게 ‘선교적 존재’로 사용하시는구나. 나의 연약한 부분인 귀에 대한 이야기를 또 그 형제에게 나눴어요. 주님을 찬양하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 주님은 어쩌면 발로 박수를 치는 것과 같은 그런 고백을 더 기뻐하시지 않을까요. 그 청년은 나중에 찬양사역자로 돌아왔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주님의 복음이 좋아서 뛰쳐나간 은혜 입은 자를 통해 주님은 남들이 이룰 수 없는 일을 이루고 계세요.”

어머니의 소천

-최근 어머님이 소천하셔서 국내에 들어오게 됐다고 하셨죠?

“네. 어머니는 오랫동안 암투병을 하셨어요.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중국에 있던 저와 태국에 선교사로 있던 제 동생이 소식을 듣고 돌아왔죠. 그후 30일을 더 사셨어요. 저도 병원에서 실습을 하면서 많은 환자들을 보지만, 어머니처럼 심한 암환자는 처음 봤어요. 어머니는 고통 속에 지옥에 앉아있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엉덩이가 짓물러 앉을 수 없었고, 눕자니 암 덩어리 때문에 구토가 올라와서 누울 수도 없었어요. 위가 막혀 물을 넘길 수도 없었죠. 지금의 고통이 10분 전의 고통보다 5배라고 하셨어요. 어머니를 보면서 우리 형제는 지옥은 이런 곳이구나… 어느 것 하나 소망이 없는 곳임을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그러나 어머니는 감사를 잃지 않으셨어요. ‘나는 물로 입이라도 헹굴 수 있잖아.’라고 하시면서요. 그리고 찾아오는 모든 분들에게 물을 드리라고 했어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러셨죠. 그때 목마른 어머니는 물 떠온 하인으로 남고 싶은 것이었고,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생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이들에게 증거하고 계셨던 거예요. 힘이 들어 기절하더라도 누구도 지옥에 가면 안 된다고 하시는 거였어요. 문병을 오시는 분들께 복음을 전하고 기절하고, 또 전하고 기절하시고…. 때로는 누군가에게는 날카로운 권면을 하셨어요. 어차피 주님께 가는 길인데 두려울 것이 뭐가 있겠어요.”

– 고통 가운데에서 복음에 대한 열망을 갖고 계셨네요.

“그렇게 믿음으로 순종했지만, 고통은 멈추지 않았어요. 날로 아프고 계속 토하고, 빈혈에 쇼크를 반복하셨어요. 영적 전쟁이 마지막 순간까지 끊이지 않았어요. 그때마다 어머니는 두 손을 모으셨어요. ‘주님, 도와주세요. 내게 주님의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그 입술에서 찬양을 쉬지 않으셨어요. 소리는 나오지 않아도, 기절하는 한이 있어도 어머니는 멈추지 않으셨어요. 어떤 날은 너무 괴로운 마음에 주님께 데려가 달라고 하시기도 했어요. 차라리 독약을 먹고 싶다고… 진통제도 안 듣고 너무 힘들어 하셨어요. 옷을 다 갈아입고 주님께 갈 준비를 했지만 그날도 주님은 불러주지 않으셨어요. 병원으로 어머니를 다시 옮기고 주님은 가족들, 교회 분들, 선교사님들 앞에서 주님을 증거하는 자리에 끝까지 어머니를 세우셨어요. 삼촌은 교회를 싫어하고 교회와 목회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많으신 분이었어요. 어머니는 삼촌에게 예수 그리스도밖에 전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와 어려운 관계에 있던 친척과도 용서와 회복의 시간을 갖게됐어요. 그렇게 화해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주님을 증거하셨어요. 그리고 본인은 원치 않으시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도 병원에 옮겨 치료를 더 해보자는 가족의 원함에 자신을 내어주시고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시기 며칠 전 주님께서 어머니에게 천국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셨어요. 온 다리가 부종으로 힘드셨는데도 어머니는 양팔과 다리를 흔들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어요. 저는 병원에서 수많은 죽음을 봤어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 죽음을 기대하는 한 증인, 어머니를 봤어요. 왜냐하면 그것은 영원의 시작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어머니는 5월 24일. 주님 품에 안기셨어요.”

천국소망을 남겨주신 어머니

“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슬픈 건 아니에요. 언젠가 다시 만날 거라는 소망이 있기에 어머니의 죽음 자체가 슬프지는 않아요. 지금은 천국소망이 있어요. 온 가족을 무너지지 않고 붙들어줄 수 있었던 것도 천국소망이었어요. 어머니 메시지는 분명해요. ‘지옥은 안 된다.’는 것이요. 어머니가 소천하시고 며칠 후 꿈을 꿨어요. 어머니는 “현식아. 마라톤 경주는 끝까지.”라고 말씀하셨어요. 많은 말을 하고 싶으셨을 줄 알았는데, 믿음의 경주를 얘기하셨어요. 저는 어쩌면 천국보다 이 세상이 더 좋았는지 몰라요. 그러나 진짜 천국을 소망하는 증인을 보고 나니 그 천국이 소망이 되기 시작했어요.”

– 마지막으로 기도제목을 나눠주세요.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제 소망 하나는 빨리 죽는 것이고, 또 주님 오실 날을 앞당기는 것에 나를 드리는 거예요. 단 1분 1초라도 앞당길 수 있다면 저를 사용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고 결단했어요. 지금은 그 고백을 이루실 주님을 기대하며 이 시간을 준비하고 있어요. 지금은 휴학중 한국에서 청년들에게 제 삶을 나누면서 특강을 하고, 마지막 30일간 주님이 어머님을 통해 해주신 말씀을 증거 할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어머니는 모든 것으로 주님을 드러내고 싶어 하셨어요. 책을 통해 제 의가 드러나지 않도록, 주님이 말씀하신 것만, 보여주신 것만, 허락하신 것만큼만 드러낼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복음기도신문]

E.J

<저작권자 ⓒ 내 손 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 문의: gnpnews@gnmedia.org

[관련기사]
“시에라리온을 섬길 다음세대가 일어나도록 기도하며 순종해요”
“성도들의 구원이 목회자인 저의 유일한 관심사에요”
“예수님만 섬기는 믿음의 가정이 되기를 소망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