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호 / 일상에서 만난 하나님]
저는 20대 중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이후 오랜 시간 교회생활을 하며 중보기도자들은 어떤 특정한 분들이 은사를 받아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중보기도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겼습니다. 그러던 중 2017년 총체적인 십자가 복음을 듣게 되면서 진리에 대한 나의 무지와 무식이 벗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에 대해 얼마나 왜곡된 많은 생각들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 후 저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기처럼 하루에 한 시간씩 열방을 품고 기도하는 ‘기도24·365’에 참여했습니다. 그동안 나의 기도는 나와 가족들의 문제가 우선순위였고 가끔 기도를 부탁받는 수준이었습니다. 문제해결, 소원성취를 갈망하던 죄인 중의 괴수인 저에게 중보기도의 자리에 앉게 하신 후 주님은 이 자리에서 주님의 사랑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십자가 사랑 없이는 중보기도가 불가능했습니다. 저는 기도훈련과정을 통해 중보기도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기도대상, 자세, 방법, 시간에 대한 개념들을 다시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내가 사랑하는 사람, 관심 대상, 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 내게 호의적인 사람들만을 위해 기도해왔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게 관심 없고, 호의적이지 않는 사람뿐 아니라 나를 싫어하며 원수처럼 대했던 사람들을 위해서는 기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옹졸함과 간사함, 그리고 말씀에 대한 무지를 참 많이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매년 일독을 해도 나는 말씀과는 상관없는, 그저 종교인이었습니다.
가만 두어도 망할 수밖에 없었던 저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은 엄위하신 하나님과 죄인인 나 사이를 화평케 하시는 유일한 중보자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이미 죄로 인해 멀어져 버린 하나님과 나 사이의 간격을 제하셨고, 존재적으로 죄 체질인 나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신 분이셨습니다. 그러한 주님의 사랑과 마음을 나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예수님의 자격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중보기도를 하는 중보기도자가 되었습니다. 중보기도자는 선택이 아닌 복음을 받은 모든 자들의 ‘부르심’임을 고백합니다.
그동안 미움과 원망으로 대했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야욕을 위해 우리 남편을 쉼 없이 일하게 하여 결국 병을 얻게 한 원인이 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속에서 끊임없이 마음으로 살인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무관심이라는 나의 악심을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사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복음이 필요한 자였지만 저는 그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무리들이 떡과 생선을 배부르게 먹고 각종 질병에서 고침 받고 진리의 말씀을 들었지만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때에도 예수님은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못 박은 자는 바로 ‘나’였습니다. 그런 나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마침내 복음을 위해 돕는 자로 세워 주시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제 나는 남편에게 어려움을 줬다고 생각했던 그분을 용서하고 그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분 안에 담아 놓으신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실 주님을 기대하면서 나의 모든 매임을 풀어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중보기도자는 눈에 보이는 무기가 없어도 진리로 세상 권세자들을 이긴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나를 눈에 보이지 않으나 실제인 통치사명을 가진 영적존재로 불러주셨습니다. 중보기도자로서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기에, 이제 주님이 불러주시는 어떤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나의 상황과 감정을 따라 행하지 않고 열방을 위한 중보적 존재로 저를 드립니다. [복음기도신문]
정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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