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적 동의는 믿음이 아닙니다

일러스트=김경선

[218호 / 마음의 눈을 밝히사(2)]

‘기쁜 소식’인 복음을 알고 있는데도 불행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알고 있다고 해도 그 앎을 누리지 못하면 불행할 수 있습니다. 복음이 자신에게 실제(實際)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복음은 원래부터 이론이 아닙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살아계신 인격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는데, 그분 안에서 누리지 못하면 복음이 실제 되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내 삶의 길과 진리, 생명이 아니라면 실제 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지식적 ‘동의’를 ‘믿음’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믿었다면 그 믿는 진리가 나를 이끌어 가게 되어 있습니다. ‘믿기는 믿는데, 동의는 하는데…’ 이런 지식적 동의를 믿음이라고 생각할 때, 그 믿음이 자신에게 전혀 실제가 되지 않는 모순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예배당 안에서 사는 원리와 예배당 밖에서 사는 원리가 다른가요? 내가 믿는다는 교리가 실제 내 삶을 움직이거나 나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습니까? 그렇다면 그 교리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평생 예수 믿는다고 살다가 마지막 날 믿음의 부도(不渡)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마지막 날에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말로만 믿고, 실제로는 믿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내게 실제 되지 않았다면, 내가 알고 있는 복음이 내게는 복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불행한 일은 왜 벌어지나요? 그 지식이 나를 움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나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까? 그렇다면 그 진리가 내게는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기도신문]

<복음을 영화롭게 하라(2017, 규장) 김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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