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호 / 마음의 눈을 밝히사 (5)]
두려움의 근원은 무지(無知)입니다. 무엇을 모른다는 것일까요? 첫째, 복음을 모른다는 것이고 둘째, 지금 우리가 살면서 붙들려 있는 이 세상의 실체를 모르는 것입니다. 결국 복음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뿐 아니라, 이 세상의 실체를 모르니 세상이 주는 안락함이나 세속의 가치를 버리지 못해 두려움에 빠진 채 복음에 올인(all in)하지 못하고, 복음의 실제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복음을 듣고 알까요? 지식으로, 신학적으로 동의하고 알고 가르치고 선포한다고 해도 그것이 내 삶에 실제가 되지 못합니다. 내 안에 진짜 실제 노릇을 하고 나를 움직이게 하고, 나를 이끌고 가는 실세(實勢)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왕’이라고 고백은 하는데 진짜 나를 움직이는 실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입니까, 나입니까? 이것을 정직하게 묻고 대답해봐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복음을 깨닫고 아는 길을 애매모호하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길로만 가면 복음은 관념이 아닌, 우리를 움직일 수 있는 실제적인 앎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의 야망 성취를 위해 도구로 써먹었던 복음, 나의 알량한 의(義)를 변호하기 위해 치장했던 복음, 눈곱만한 자존심 하나 포기할 수 없는 그런 맥 빠진 복음, 말만 무성하고 신학적 지식에 머물러 있는 복음은 애당초 없습니다. 복음은 원래의 자리에서 최고의 경배를 받아야 합니다. 복음은 예수와 구원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나를 움직일 수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이론과 실제가 따로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기도신문]
복음을 영화롭게 하라
김용의 | 규장 | 2017
<저작권자 ⓒ 내 손 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문의:
[관련기사]
두려움을 넘어 영원한 자유인이 되어야 합니다
두려움이 삶을 어렵게 합니까?
지식적 동의는 믿음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