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호 / 뷰즈인 북스]
프랜신 리버즈가 회심한 후, 예수님 족보에 나오는 다섯 여인을 주제로 쓴 소설 시리즈 중 한 권인 이 책은 라합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성경말씀을 근거로 라합의 믿음의 여정을 이야기로 엮었다. 자격 없는 자에게 일방적으로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그 주님을 향한 순전한 믿음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더욱 필요함을 강조하고 싶은 것 같다.
여리고 성벽 위의 집에 사는 기생 라합은 소문으로 도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야기에 주목했다. 그녀는 홍해 물을 마르게 하고 애굽에서 주님의 백성을 구해내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이 믿어졌다. 정작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들을 온몸으로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익숙함으로 감흥 없는 40년 전 이야기였지만, 머나먼 이방의 패역한 성에 사는 기생 라합에게는 두려움과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갖게 한 소식이었다.
이미 이스라엘에게 여리고성을 주기로 작정하신 하나님께서 굳이 정탐꾼을 보내신 이유는 혹시 그 한 사람, 라합의 구원이 아니었을까. 사실 라합의 존재와 삶은 심판을 결코 피할 수 없는 여리고의 어느 누구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행위도 아니고, 열매도 아닌, 오직 믿음으로만 말미암는 구원의 의를 보여주시려고 하나님은 그 어마어마한 대가를 지불하고 그녀를 찾아내신 것은 아닐까. 우리의 영원한 왕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이 그토록 자랑하는 혈통이나 율법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만 얻는 의의 계보를 따라 이 땅에 오셨다.
정탐꾼을 단번에 알아본 라합. 자기 동족과 도시를 멸망시키기 위해 파송된 적군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생명을 걸고 그들을 숨겨준다. 무력하고 혐오스러운 죄 된 존재에서 떠나 영원하고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을 따라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간절함이 모든 현실적인 두려움을 뛰어넘어 마땅히 붙들어야 할 그것을 붙들게 했다. 그녀는 그냥 목숨을 구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 싶었다. 감히 자격은 전혀 없지만 말이다.
성벽 밖으로 붉은 줄을 내리라는 약속을 받아 내고, 가족들을 자기 집으로 모아 언제 있을지 모르는 이스라엘의 공격을 기다리는 라합은 계속 인내와 믿음의 시험을 받는다. 우상을 라합의 집에 끌어들이고 계속 투덜거리며 불안해만 하는 가족들에게 어떻게든 하나님을 전하려는 라합의 눈물겨운 믿음의 싸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간절히 기다리는 구원의 날은 그동안 그녀가 의지하며 몸담아 살았던 삶의 모든 터를 철저하게 무너뜨리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 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그 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 싶었다
그렇게 그녀를 가슴 뛰게 했던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이 여리고성을 실제로 무너뜨리시는 것을 목도하게 됐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경험하고 만난 하나님을 이야기 할 수 있게 된 라합의 감격과 기쁨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라합은 유다 지파 살몬과 결혼하여 이스라엘 중에 거하게 되고 보아스를 낳는다. 다윗 왕의 고조할머니,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로 마태복음 1장에 실리게 된 것이다.
마지막 날, 우리의 왕이 마침내 이 땅의 모든 것을 심판하러 오실 때, 우리는 이 여리고성에 남아 있는 것 중 아무것도 들고 나갈 수 없다. 철저하게 진멸되어 바쳐질 것들 사이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는 조금도 나은 것을 찾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격 없는 구원을 약속받았다. 믿음으로 말이다. 그 날이 오기까지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어지럽겠으나 라합의 집 안에 모여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우리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일상을 살아갈 수 없다. 엎치락뒤치락 끊임없는 의심과 불안이 우리를 조여 올 때에도 끝까지 이겨낼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믿음의 싸움을 두려워하지 말자. 성벽으로 내려진 붉은 줄을 바라보자. 끝까지 그 약속을 붙들자. 마지막 일곱 번째 바퀴를 돌고 있는 하나님의 군대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복음기도신문]
이귀영 선교사
<저작권자 ⓒ 내 손 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
문의:
[관련기사]
“반드시 이 십자가를 기억해야 한다”
단 한 명이라도 어둠에 있는 한, 나는 싸울 것이다
“어려움 아래서 교회는 건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