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지치지도, 피곤치도, 곤비치도 않습니다


부모도 자식을 맘대로 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나마 어려서는 부모님 말을 듣는다 해도, 머리가 커지면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것을 말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 자녀에게 사랑하는 애인이 생겼습니다. 이제 갓 스물이 넘은 두 사람이 만나 손을 꼬옥 잡고, 한겨울 그 추운 한강변을 오들오들 떨며 걸으면서도 도무지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단지 둘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지치지도, 피곤치도, 곤비치도 않고 걷고 또 걷습니다. 이렇게 뜨거운 사랑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사람을 움직입니다. 인격적인 존재는 마음이 감동하고 동기가 부여되어야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방법으로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도 있는데, 바로 ‘두려움’과 ‘의무감’입니다. ‘두려움’은 사람을 조종하고 컨트롤할 때 많이 사용됩니다. 두려움이 동기가 되면 사람들은 아주 잘 움직입니다. 군대가 바로 그런 곳입니다. 그러나 이 동기는 외부에 있어서 그것이 사라지면 절도 있는 삶도 무너집니다. 군대를 제대하면 군기가 빠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의무감’이나 ‘사명감’도 사람을 움직이는 아주 효과적인 동기이지만, 동기가 여전히 외부에 있어 한계가 있습니다.

일러스트=김경선

그러나 ‘사랑’은 그 동기가 내부에 있습니다. 사랑은 철저히 자발적이고 다른 목적을 두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그토록 사랑했는데 나는 아무것도 얻은 게 없어.”라고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냥, 이유 없이, 그게 너니까, 너라서, 널 사랑해.” 이렇게 존재적인 사랑을 받는 사람은 그 마음이 움직입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하나님의 본심이 사랑이라는 것보다 더 안전한 것은 없습니다. 이 사랑은 결코 마르지 않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바라며 견딥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랑으로 우리에게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이 사랑은 우리를 반드시 움직이게 합니다. 나를 움직일 수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기도신문]

복음을 영화롭게 하라
(김용의.규장.2017)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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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만약 내게 지쳤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본심은 ‘사랑’입니다
나의 ‘원형’은 ‘예수의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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