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변화 받은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

영화로 복음을 전하는 김상철 목사(파이오니아21)

취재진이 사무실에 도착하자 김상철 목사는 직접 커피를 대접하기 위해 물을 끓였다. 한 단체의 대표가 직접 타 준 커피 맛은 푸근함과 겸손함 그 이상이었다. 그는 자신을 감독이 아니라 목사라고 소개했다. “저의 정체성은 목사에요. 이곳에는 음악 감독님도 있고 배우도 있지만 다 집사님이라고 불러요.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이지요.” 영화감독의 옷을 입고 20년간 파이오니아21을 섬겨온 김 목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어떻게 목사님이 영화감독을 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영상 사역의 첫 시작은 이메일 전도였어요. 전도를 해 본 사람은 아는 건데, 제가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하면 먼저는 저에게 채워지는 영적인 은혜가 있어요. 은혜를 받으면 사람 얼굴이 바뀌죠. 은혜 받은 사람은 모습이 달라요. 그래서 전도는 명령 이전에 하나님의 선물이에요. 복음을 전하는 게 이렇게 좋은데 나이가 많다고, 아프다고, 내성적이라는 등의 이유로 안 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누구나 전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하다가 이메일 전도를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데 이메일에다가 영상을 첨부하면 더 좋겠더군요. 그래서 영상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당시 영화 타이타닉이나 클리프행어로 전도 영상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영화에 대한 저작권법과 저변의 인식이 강화되기 시작했죠. 그때 기도하는데 주님이 저에게 ‘준비하라.’는 감동을 주셨어요. 이제는 자체 컨텐츠가 제작되어야 할 시기라고 생각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영상을 시작하게 됐어요.”

이메일 전도용 영상 제작으로 시작

– 그러면 영화 제작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죠?

“제가 부교역자로 사역을 하던 2002년도에 영상사역기관인 파이오니아21연구소를 설립했어요. 인터넷과 영상을 통해 전도와 양육을 한다는 목표로 세워진 기관이었어요. 그런데 2007~8년도에 배우들이 자살하는 사건들이 계속 있었어요. 저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을 때 삶을 포기하려고 했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어요. 그때 미국에서 한 분이 연락이 왔어요. 자살을 주제로 단편 영화를 만드는데 도움을 줄 수 있겠냐고요. 마침 제게 800만 원이 있었어요. 제겐 전 재산이었어요. 그때 자살을 주제로 하는 영화 두 편을 제작하는 데 전체 제작비 중 일부를 지원하게 됐어요. 그게 영화를 제작하는 데 첫 계기가 됐어요.”

– 그렇군요. 그런데 영화감독만 하시는 게 아니라 파이오니아21 단체도 세우셨는데,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파이오니아21은 부교역자로 있으면서 겪었던 경험이 동기가 돼 세우게 됐어요. 담임목사님이 부활절이니까 예수님 부활하시는 장면이라든지 적당한 영상이 없냐고 물어보셨어요. 며칠 동안 영상을 찾았어요. 다운로드를 하려니까 5만 원을 내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 사례비도 적었는데 너무 간절하니까 5만 원이 아깝지가 않았어요. 그 영상을 목사님께 드리면서 결정한 게 있어요. 자료 찾기가 이렇게 힘들면 안 되겠다. 이렇게 비싼 자료를 누가 사겠나. 돈이 없는 사람들도 쓸 수 있도록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것이 파이오니아21의 설립 동기에요. 그래서 우리 영상들은 필요하면 얼마든지 쓰실 수가 있어요.”

– 그러면 본격적으로 영화를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 스페인에서 촬영중인 김상철 목사. 제공: 김상철 목사

“저는 목사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교회론이나 목회 철학이 분명하지 않았어요. 그냥 신학교 졸업했으니 목회해야지라고 생각했지 한 영혼에 대한 관심이 있는 목사도 아니었죠. 저에 대한 정체성을 찾기 위해 여러 고민들을 하던 중에 ‘잊혀진 가방’과 그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의 선택 – 잊혀진 가방 그 못다한 이야기’라는 영화를 하게 됐어요. 영화 촬영지가 아프리카 동부 지역이었는데, 내전이 진행 중이어서 위험하기도 하고 여러 이유들 때문에 제가 감독을 하게 됐어요. 이것이 저의 영화감독의 시작이었어요. 전 영화를 만들면서도 목회의 연장선에서 한 번도 넘어선 적은 없어요. 사역자들이 목회현장을 떠나거나 기도하지 않고, 말씀 준비가 없으면 반드시 사역은 쇠퇴합니다. 감사하게도 제게는 중독 사역을 허락해 주셔서 그 영혼들을 섬기게 됐어요. 이것이 제 목회의 원천이 됐습니다.”

영화는 나의 목회현장

–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은 과정도 궁금합니다.

“제 꿈은 교사였어요. 그러나 집안 환경이 어려워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해서 꿈이 좌절됐어요. 아버지는 아프셨고, 저는 중국집 배달, 인쇄공, 용접공, 벽지 공장, 길거리에서 옥수수도 팔았어요. 그래서 학업은 17살에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다시 시작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여전히 저는 우울했어요. 교사의 꿈이 좌절됐으니까요. 계속 힘들고 우울한 인생을 살았어요. 결혼을 하고 나중에 예수를 믿고 나서는 목사도 가르치는 일이라는 걸 생각하게 됐어요. 게다가 너무 갈급해서 교회를 찾아간 어느 날, 목사님이 서재에서 설교 준비를 하고 계신 모습을 봤어요. 저는 밖에서 막일도 하고 어렵게 사는데 평온하게 설교 준비하시는 모습이 천국 같았어요. 그때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서 신학에 대한 사모함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방언도 하게 되고 여러 가지 영적 체험도 많이 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제게 이렇게 해야만 했던 게, 제가 그렇게 안 하면 못 믿을 거 같아서 그러셨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정말 신비로운 체험들을 참 많이 했어요.”

– 파이오니아21에 대해 소개하실 때 ‘영화 한 편으로 복음을 전한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영화로 복음을 전하게 되셨나요?

“영화는 한 편의 설교에요. 그래서 영화를 설교처럼 만들어요. 그렇다고 설교하듯 시나리오를 쓰진 않고, 어떤 것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면 가서 촬영하고, 촬영하다 보면 모아져요. 제가 만든 영화들은 믿음의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결을 따라서 가요. 우리가 사람을 바꿀 수는 없어요. 그러나 이 영화를 만나서 변화 받은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잖아요. 결국은 영화도 한 사람이에요. 한 사람만 예수 믿어도 우리 영화는 성공했다고 얘기하죠. 하나님이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길 때에 사탄은 하나님의 것을 탐해요. 사탄은 집요하게 한 영혼을 망가뜨리죠. 이게 영적인 원리에요. 그래서 기독교 영화의 핵심이 영혼이에요. 가끔 영화를 보고 선교지로 갔다는 이메일도 받아요. 그렇다고 사람을 바꾸는 일에 제가 영화를 잘 만들어서 그 일을 한다는 건 아니에요. 영화 속에 담겨있는 사람들의 삶이 고결하고 순결하고 정직한 것이죠. 그러니까 제가 영화를 만들 때 반드시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제가 감독을 했지만 하나님이 저를 쓰시고 스텝들을 귀하게 쓰신다는 거예요. 예술 감독, 음악 감독, 배우, 그런 사람들이 함께 한 거지, 제가 한 게 아니거든요. 저는 조합을 시켰을 뿐이에요.”

– 목사님이 영화를 만드실 때 중점을 두시는 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기독교적인 마인드로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는 교회가 나와야 해요.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제자도인데, 그것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이죠.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도 이 땅에 내려오셨어요. 이것은 자기를 낮추셔서 우리의 눈높이를 맞춰주신 것이죠. 예술작품을 만들 때 이러한 자세가 없으면 그 영화는 쓰레기통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더 높은 도덕적 가치를 요구해요. 그러나 저도, 우리 감독들, 배우들도 무너질 수 있어요. 그래서 최소한의 장치를 해놓죠. 우리가 무너져도 그 안에 있는 본질인 복음은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게 저의 핵심 목표에요.”

– 예수님이 낮아지셔서 찾아오셨다고 하셨는데, 목사님에게도 예수님이 어떻게 찾아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꿈이 좌절되었던 사람이에요. 수면제 70알을 두 번 먹어보고 산에 가서 목을 매달아보기도 했어요. 누가 등에 칼을 찌르기도 하고 또 절벽에서 굴러 떨어지기도 했어요. 여러 죽을 고비를 겪으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 또 부활이 무엇인지 깨달아지기 시작했어요. 인생의 주인이 나인 줄 알았는데 주님이 나의 주인인 것이 깨달아졌어요. 이것은 예수님이 저를 찾아오신 것이 아니면 불가능하죠. 왜냐하면 제가 예수님을 만나려고 몸부림친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저는 힘들 때 길거리에 나가서 ‘당신이 살아 있느냐. 살아 있으면 나를 이렇게 뒀느냐.’고 하늘에다 삿대질한 사람이거든요. 그런 제게 하나님은 여러 통로를 통해서 복음을 만나게 해주셨어요.”

▲ 선교 관련 특강을 하고 있는 김상철 목사. 제공: 김상철 목사

절망의 끝에서 하나님을 만나

– 복음을 만나신 과정을 들려주세요. 그 간증을 들어야 할 분이 많을 것 같아요.

“저는 어려서 명심보감을 배웠어요. 공부는 늦게 했지만 14살 때부터 논어, 맹자, 대학을 다 읽었어요. 아버지는 별자리 보는 법과 길거리에 있는 약초를 가르쳐주셨어요. 저는 기독교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어요. 21살에 직장에서 아내를 처음 만났어요. 자기를 만나려면 교회 나와야 된다고 해서 교회에 가기 시작했죠. 1년 만에 결혼했는데, 결혼 후에는 교회에 안 나갔어요. 제가 아내에게 고생 많이 시켰어요. 죽으려고 돌아다니고 돈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도 밥을 해 놨으니까 집에 오라고 따뜻한 말들을 많이 했어요. 저는 항상 우울한데 아내는 항상 밝았어요. 제 앞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장롱에 숨어 있다가 제가 들어가면 갑자기 나와서 놀라게 하기도 했죠. 그걸 보면서 ‘예수 믿으면 저러나?’ 생각했어요. 아내도 고생을 많이 하면서 자랐거든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를 떠나서 먼저 ‘예수님을 믿으면 저렇게 되는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게 가장 큰 동기에요. 그리고 저를 변화시킨 것이 영화죠.”

– 영화를 만들면서 변화되셨다고요?

“제가 영화를 하면서 만난 두 분이 있어요. 그중 한 분이 헬렌 로즈비어 선교사에요. 그분은 제가 목사로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 시점에 만난 분이었어요. 저는 목회를 스스로 그만뒀거든요. 나 같은 사람은 목회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들은 여럿 있죠. 제가 섬기던 교회가 성장했어요. 가건물에서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예배당을 옮기고 싶더군요. 그래서 성도들과 의논도 하지 않고 예배당을 옮기기로 했어요. 그 다음 주일에 성도들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성도들이 어려워했어요. 새로 옮긴 교회는 차로 30~40분이 더 걸리는 위치였는데, 성도들은 그곳에 오려면 한 시간 이상 더 고생해야 하는 거예요. 제가 성도들을 배려하지 못한 거였죠. 아차 싶어 이사는 포기했어요.”

<이상 245호에 게재>

– 그런 절망의 과정이 있으셨군요.

“두 번째는 교회 집사님 중에 한 분이 기소중지 중에 우리 교회에 나오셨어요. 이 분이 수배 중에 잡힌 거예요. 경찰에게 연락이 왔어요. 제가 어떻게 하겠어요. 빚쟁이 찾아다니면서 우리 성도니까 도와달라고 하면서 합의를 받았어요. 그런데 이 분이 빚을 갚기 위해서 사업을 하겠다며 저에게 보증을 서달라는 거예요. 그건 안 되겠다고 얘기를 했죠. 며칠 있다가 집사람하고 그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화를 냈어요. 그 집사님이 나한테 그 말을 하는 게 맞냐면서요. 그런데 그때 예배당 문이 슥 열리면서 그 집사님이 들어오셨어요. 다 들으신 거예요. 그리고 그분은 교회를 떠났어요. 많이 서운하기도 했으나 제가 좀 더 성도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너그러워야 하는데 저는 그러한 목회자는 아니었어요. 너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목회를 내려놓은 결정적인 일이 있었어요.”

– 어떤 일이었죠?

“우리 교회에 여자 집사님이 있었는데 교회 봉사를 잘했어요. 어느 날 아침 일찍 찾아왔어요. 화장을 하고 짧은 치마를 입고 왔어요. 그러더니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어요. 저도 얼른 사모를 불러서 같이 앉혔어요. 그분의 첫마디가 ‘목사님 제가 어디에서 산 줄 아세요?’라더군요. 거기는 집창촌이었어요. 그분은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면서 우리 교회를 다녔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일예배 드린 후에 월요일부터는 계속 그 일을 했더군요. 교회를 다녀도 불신자였죠. 그런데 이 분이 복음을 들으니까 저한테 도와달라고 한 신호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건 중독이에요. 그건 살려달라는 거예요. 제가 지금 같았으면 그 분을 살려보려고 했을 거예요. 그런데 내일 오라고 했어요. 선배 목사님께 물어보려고요. 근데 지금도 그 분을 못 만났어요. 그 이후에 저는 목회를 내려놨어요. 사람을 보내줘도 나 같은 사람은 안 되는구나. 그렇게 오늘까지 목회를 안 한 거예요.”

– 목회를 내려놓을 정도로 마음에 낙심이 크셨겠네요. 이때 헬렌 로즈비어를 만나신거군요.

“그 분을 만나고 제가 한 첫 질문은 ‘주님을 믿기 시작했을 때 처음 마음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어요. 그때 로즈비어 선교사님은 기도 많이 하고 성경 많이 봐야 한다고 하셨어요. 정말 힘들면 기도도 안 되고 말씀도 안 들리거든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합니까?” 다시 질문했어요. 그 분은 케임브리지 의대를 나와서 28살에 콩고에서 의료선교사로 헌신한 분이에요. 콩고에 내전이 일어나도 피난 가지 않고 남아있던 선교사들 중에 한 사람이었어요. 동료들은 순교했고 자신은 성폭행을 당했죠. 한 평 남짓한 동굴 감옥에서 여성으로 수치를 당하고 죽음의 공포를 느꼈던 사람이잖아요. 그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물으셨대요. “헬렌, 나에게 감사할 수 있겠니?” 하나님께 되물었어요. “하나님 같으면 감사할 수 있겠어요?” 그때 하나님이 이렇게 다시 물으셨다고 해요. “그럼 헬렌. 내가 너를 믿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겠니?” 그때 로즈비어 선교사가 저에게 이런 얘기를 했어요. “지금까지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도 나를 믿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어요.” 그리고 주님께 이렇게 고백했다고 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이 찾아오면 도망가거나 피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부르신 일을 마무리할 사람, 그게 저라는 것을 믿겠습니다. 그리고 저를 믿어주신 하나님이 허락한 고난이라면, 감사하고 끝까지 갈게요.” 그분이 제게 말했어요. “김 목사님. 너무 힘들고 또 처음 마음을 회복하려면 하나님이 당신을 믿고 있다는 사실에 아멘하세요.” 제가 아멘 했어요. 그때 복음을 듣게 됐죠. 하나님이 나를 믿고 계신다.”

헬렌 로즈비어 통해 듣게된 복음

– 고난 중에 진주 같은 복음을 발견하셨군요.

“지금은 웃으면서 말씀드리지만, 힘들 때는 오죽하면 나 같은 사람을 믿어주실까 생각을 하게 돼요. 제가 어떤 설교 자리에 가던지 이 내용은 빠뜨리지 않아요. 그리고 제게 영향을 주신 분이 또 있어요. 엘리엇 테프에요. WEC 선교사로 스위스에서 마약, 알콜 중독자 복음화를 위한 베텔 선교회(Betel Ministries)을 섬기고 있는 분이에요. 그 분이 얘기했어요. 제럴드 메이라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는 모든 사람의 95%가 무엇인가에 중독되어 있고 나머지 5%만이 중독되어 있지 않은데, 그 5%를 만나본 적이 없다고 했어요. 저도 그랬어요. 기도하는데 주님이 마음을 주셔서 1년 정도 스페인에 가서 테프를 만나고, 마약 중독자들의 공동체 생활도 경험했어요. 마약중독자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말이 있어요. 영혼의 끝에 서있는 사람들(Edge of eternity). 마약중독자들 대부분은 에이즈 환자였어요. 엘리엇 테프 선교사님이 사역하시던 1983년 그때만 해도 에이즈는 합병증이 오면 거의 다 죽었기 때문에, 그들은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이었어요. 언제 죽을지 몰라도 지옥에 갈 수 없잖아요. WEC선교회의 설립자인 C.T 스터드가 유명한 말이 있어요. 자기는 할 수만 있다면 지옥문 앞에 가게를 차려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말을 해요. 엘리엇 테프가 그런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어요. 스페인에서 가장 장례를 많이 치른 사람일 거에요. 그는 베텔 선교회를 통해서 교회 개척 사역을 하는데, 22개 나라 100개 도시에 4500개의 교회를 개척했어요. 거기에서 인생이 끝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복음을 만나서 변화해요. 그런데 한국에는 베텔을 설립할 계획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의 사역의 정신을 전부 다 가져와서 벧엘회복공동체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중독사역을 하게 됐어요. 그러나 사역 이전에 그의 삶을 통해 저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지 보게 됐죠.”

베텔선교회 통해 중독사역 시작

▲ 영화 ‘부활’ 촬영 당시 이용규 선교사와 함께. 제공: 김상철 목사

–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엘리엇 테프 선교사는 중독 사역을 하면서 자녀들을 중독자들 안에서 풀어놓고 키웠어요. 아이들이 고생을 많이 했을텐데 순종을 잘해줬어요.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고마워했겠죠. 그러다 안식년이 되어 미국으로 자녀들과 함께 갔어요. 하루는 아내가 버지니아에 강의를 간 동안 아들 4명과 함께 여행을 가요. 그때 큰 아들의 운전미숙으로 교통사고가 나면서 막내만 죽게 돼요. 그때 가족에게 위기가 와요. 그의 아내는 선교사의 삶을 포기해요. 실제로 3년 정도 그의 아내와 엄마로만 살아요. 엘리엇은 막내의 장례를 치르고 바로 스페인으로 돌아갔어요. 세월이 흘러 엘리엇을 만나 물었어요. 그때 왜 그렇게 스페인으로 갔냐고요. 그때가 엘리엇이 63세였어요. ‘내가 언젠가 여기서 삶을 마치고 영원한 천국에 갔을 때 내 아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때 내가 부끄럽지 않은 아빠로 만나고 싶다.’ 그 말은 뭐냐면 아들에게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삶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하나님이 내 영혼에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신 거예요. 아버지의 나라에 대한 그리움으로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죠.”

– 이런 과정을 통해 만난 복음이 영화를 통해 녹아졌겠군요. 영화를 통해 복음이 더욱 활발하게 전해지면 좋겠는데요, 어려운 점은 없으신지요?

“기독교 영화는 예술인들 사이에서 폄하를 받아요. 우리는 한계를 갖고 있어요. ‘왜 만드느냐.’는 거예요. 재밌게 하려고 만드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평가할 때 재미를 포함시켜요. 우리는 재미가 아니라 한 사람을 위해 만들거든요. 재미없을 수는 있지만 사람이 바뀌니까요. 그러나 세상의 평가는 좋지 않아요. 그래서 투자 받기가 힘들어요. 또 동역자들을 보면 지속적으로 이 사역을 하는 것에 대해 마음이 흔들려요. 믿는 사람이니까 은혜로 하지만 힘들지, 다른 목적으로 하는 자신의 동료들은 유명세를 타기도 하죠. 그러면 마음이 어려워지니까 이 사역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근본적인 질문을 또 하게 돼요. 포기하는 경우가 태반이죠.”

– 그런 어려움이 예상되긴 했습니다만, 쉽지 않군요.

“그래서 주님이 주신 생각은 우리가 여기에 판을 깔자는 거예요. 비지니스 애즈 미션(business as mission)을 할 수 있는 곳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을 만들고 그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그곳에서 놀 수 있게 하면, 그동안은 각자도생하다 보니까 지쳐 나가떨어지고 했는데 이런 기반을 만들면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으로 교회를 도울 수도 있어요. 이제는 코로나로 비대면 시대이기 때문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통로들이 제한되고 있어요. 결국은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비대면 시대 영상 플랫폼 대비해야

– 이 일을 위해서는 많은 동역자들과 재정이 필요하겠습니다.

“이곳은 설명이 안 되는 곳이에요. 우리의 공식 헌금은 한 달에 23만원이에요. 그런데도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들이 제작됐죠. 하나님이 하신 일이에요. 오늘 아침에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3만원의 헌금이 들어왔어요. 이곳에서 영화가 만들어지고 후배들이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은 진짜 기적이에요. 필요한 재정이 있어도 기도할 뿐이에요. 그동안 하나님이 늘 공급해오셨으니까요. 한번은 모르는 사람인데 하나님이 갖다 주라고 했다면서 1000만 원을 주고 갔어요. 그 다음은 1100만 원을 또 주고 갔어요. 하나님이 갖다 주라고 했다면서요. 꼭 필요한 금액. 기도하지 않으면 절대로 버티지 못하는 재정. 그리고 저희들이 아끼고 아껴 깊은 바닥에까지 이르는 헌신이 포함되면서 완성되어 왔어요.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어요. 그래서 늘 부족하지만 마음은 행복합니다. 재정뿐 아니라 영화를 섬겨주는 감독, 배우들도 그냥 와서 섬겨줍니다. 배우가 자기 역할이 끝나면 조명을 들기도 하고, 주변 통제도 하고요.”

– 이런 연합과 섬김이 가능한 원동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가치공유죠. 지금까지 이야기한 가치. 우리가 하고 있는 추구하고 있는 꿈과 비전이 동의되기 때문에 같이 하는 거예요. 다들 복음 때문에 모인 것이죠. 한 프로젝트를 하면 60명 정도가 참여하게 되는데, 각자 생업이 있고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모여요. 너무 감사하죠. 제가 올해 나이가 53입니다. 부모님 기준으로 따지면 얼마 안남았어요. 제 마지막 꿈이 있는데요, 저는 땅 파는 사람이고, 개척하는 사람이고, 도로를 닦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조직을 구체화시키고 체계화 시키는 건 다음세대가 할 몫이죠. 보통 한 기관이 30년 이상 지속되기가 힘들다고 해요. 그런데 100년 이상 가는 곳이 있어요. 그런 곳은 어느 순간이 되면 리더가 교체되는 곳이에요. 제게도 그 시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이것이 이 모든 사역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우리의 신앙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예수를 바로 믿어야 영화가 제대로 나와요. 복음이 준비되고, 콕 찔러도 툭 튀어나올 수 있는 사람이 가르쳐야 흔들리지 않아요. 그러한 사람들이 세워지고, 그들이 복음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을 만들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지금 필요한 재정들이 있는데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도록 기도해주세요.”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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