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와는 다른 제목이지만 참 잘 정한 한국말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다 읽고 끝까지 잘 참고 있다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울게 되었다. 복음이 그들을 향해 우는 것 같았다. 그래서 ‘복음이 울다’라는 한국말 제목을 지은 건가 생각해 보았다.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누군가 데이비드 플랫 목사에게 직접 히말라야로 한 번 다녀갈 것을 제안했고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트레킹을 할 여러 준비를 하고 마침내 제안한 사역자(애런)를 만나 함께 그의 사역을 둘러보는 것이다. 8일간의 히말라야 아웃리치라고 해야 할까?
한번은 비행기 옆자리에 인도 노동자가 앉았다. 그는 눈에 거즈를 댔는데 피는 거즈 위로 묻어 나왔다. 왜 다쳤냐고 물어보니 눈에 유리가 들어갔다고 했다. 나는 조용히 그를 위해 기도했다. 눈물이 났다. 그는 자신도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며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인도에 가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어려운 마음을 떨쳐냈다. 책을 읽으며 플랫 목사와 함께 이 산 저 산을 다니며 인도 노동자를 만났던 그 때의 기억이 끈질기게 따라 붙었다. 그리고 그때 떨쳐낸 어려운 마음도 같이 되살아났다. 도울 수 없다는 막막함과 도저히 가늠도 안 되는 그들의 거대한 필요에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내 자신.
복음이면 충분한가? 복음이면 다인가? 플랫 목사의 여러 고민 앞에 계속 내 자신에게도 묻게 되었다. 거대한 악의 고리, 가난의 굴레에 매여 성을 노리개로 농락당할 수밖에 없는 꽃 같은 여린 영혼들, 자녀를 보호해야 할 부모에게 착취를 당하는 비참함. 당장이라도 그들을 착취의 그 현장에서 건져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양심. 그러나 건져내면 몇 명이나 꺼내 올 것인가! 그리고 건져낸 그녀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가정으로 돌려보낼 수도 사회에 맡길 수도 없는데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복잡다단한 상황과 문제들 앞에 복음은 무엇이라고 대답하는가!
영혼의 완전한 구원이 필요하다
계속되는 질문과 누가복음을 통한 플랫 목사의 묵상은 인간 영혼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결국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에게는 영혼의 완전한 구원이 필요하다. 비참, 가난, 공포, 질병, 고통 등 여러 상황의 필요는 영혼구원의 필요 앞에 부차적인 문제이다. 착실하고 꾸준하게 20년 동안 히말라야에 사는 사람들의 많은 필요에 대해 현실적인 대안을 가지고 사역하는 애런을 통해 하나님은 그들의 필요와 영혼의 문제를 함께 돌보시고 계셨다.
무언가는 변해야 한다. 무엇이 변해야 하나? 복음을 가진 자의 외침이, 그들의 기도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의 헌신이 변해야 한다. 외침은 외침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의미가 있어야 하며, 기도를 했다면 응답하기까지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헌신했다면 진짜 드려야 한다. 히말라야의 많은 고통 때문에 눈물이 난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선교사로 부름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말에 나는 통곡했다. 끝이 없는 고통과 흑암 가운데 있는 자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는 능력을 받은 자들의 무리에 끼워 주셨다는 은혜와 부르심의 감격 때문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히말라야에서 능욕 당하는 그들과 똑같은 자리에서 사탄에게 능욕 당하던 우리를 부르셔서 영혼을 구원하는 자로 바꾸시는 기적의 하나님, 그 하나님은 동일한 기적으로 그들에게 일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복음기도신문]
최현정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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