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

일러스트=노주나
영원한 사랑의 복음 (3)

위기의 교회에 대한 주님의 해법은 사랑이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고전 16:22)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사랑을 잃어버린다면 주님은 촛대를 옮겨버리신다. 에베소교회는 첫사랑을 잃어버렸다. 칭찬 받았고, 모든 것을 다 가진 교회였다. 진리를 지키려고 투쟁하다가 사랑을 잃어버렸다. 싸움엔 이겼는데 사랑은 잃어버렸다. 교회의 가장 심각한 위기는 사랑을 잃어버린 무관심이다.

이처럼 교회는 위기 앞에 놓여있다. 우리는 비록 육신을 입고 살아가지만 더 이상 혈과 육에 대하여 싸우지 않는다. 거룩한 복음을 만나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산 우리는 더 이상 육신을 따르지 아니하고 영을 따라 사는 영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가끔 사람, 사건, 상황과 싸우느라 싸움의 진정한 대상을 분별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하늘에 속한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다(엡 6:12).

교회는 영적으로 전시 상태에 있다. 마지막 심판의 그날까지 휴전은 없다. 요한계시록은 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모든 현상의 배후의 실체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 나라와 교회의 운명은 이 나라의 정부가 아니라 하늘 보좌에서 결정 된다.

구약 성경 다니엘 또한 이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바벨론 제국의 영웅이었던 느부갓네살 왕, 그를 세우시고 낮추셨던 분은 바로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었다. 세상의 역사는 난세의 영웅들에 의해서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역사를 통치하시는 분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것을 믿는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 완성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향해 흘러가고 있다. 이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 방식이 시편 2편에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사탄의 사주를 받은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이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한다(시 2:1~3). 이것이 복음에 승복하지 않는 세상의 반응이다. 하지만 하늘에 계신 주님은 비웃으시며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신다. 그리고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고 선포하신다(시 2:4~6).

하나님 나라의 권세와 보좌를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연약해 보이지만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사신 교회에 두셨다. 그리고 선포하셨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시 2:7~9)

마지막 시대, 고통하는 때에 주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준비하고 계신다. 이 땅의 역사를 허락하시는 한 가지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 완성이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이 역사의 귀결을 믿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거듭난 교회는 총칼 하나 들지 않고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들고,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외치는 기도로 온 땅으로 나아가고 있다. (2017년 5월) <계속> [복음기도신문]

김용의 선교사
(순회선교사. LOG미션 대표)

<저작권자 ⓒ 복음기도신문 > 본지 기사는 열방을 품고 기도하는 분들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출처 [복음기도신문]을 밝히고 사용해주세요. 활용하신 분은 본지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연락처: gnpnews@gnmedia.org

[관련기사]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는 아무 것도 아니다”
“위기의 시대에 교회가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
다윗의 부르심, 나의 부르심, 교회의 부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