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호 / 일상에서 만난 하나님]
얼마 전 트럭에 흙을 잔뜩 싣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흙을 너무 많이 실은 터라 무겁기도 하고 차가 흔들거려서 서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만 뒷바퀴가 빠지고 말았다. 다행히 갓길로 바로 빠질 수 있어서 나를 포함한 3명의 동승자가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살펴보니, 차의 뒷바퀴가 빠져서 한쪽이 주저앉은 상태였고 바퀴는 차 뒤쪽 갓길에 튕겨 나가 있었다. 빠진 바퀴가 고속도로 위에 떨어지거나 뒤차에 부딪혔다면 정말 큰 사고가 날 뻔했다. 하지만 다행히 갓길로 떨어져서 지나가는 차들도 안전했고, 우리도 안전했다. 나는 그 순간 마음속에 ‘주님이 왜 이런 상황을 허락하셨을까?’라는 질문이 생겼고 자연스레 아침에 묵상했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 4:48)는 말씀이 기억났다.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그렇다면 이게 기적과 표적이라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내 믿음 없음을 다루시는 건가? 우리 중 누구에게 하시고픈 말씀이 있으신 걸까?’
그러던 와중, 뒤편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갓길에 서 있는 바퀴 빠진 트럭과 밖에 서 있는 우리를 구경하며 지나가던 한 차량이 속도를 줄이는 바람에, 뒤 따르던 차들이 줄줄이 앞차를 들이 박아 5중 추돌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나는 확신했다. 주님이 우리 중 누군가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 그러나 은근히 내 마음속에서는 그 화살이 내가 아닌 다른 지체를 향해 있었다.
다음날, 한 선교사님의 자녀가 갑작스럽게 내게 “우리 아빠 좋아요.”라고 말하는데 한 가지 질문이 생겼다. ‘나의 하나님 아버지는 내게 어떤 분인가?’ 내가 말 안 듣는다고 자동차 사고를 일으키시는 그런 분이신가? 하나님은 악한 분이신가? 내가 또 주님을 의심하고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폭풍 속에서도 나를 붙드시는 생명의 주
사탄은 가장 핵심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건드렸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고 좋으신 분이라고 매일 입으로는 찬양해놓고, 현실에서는 하나님의 성품부터 의심하게 된다. 좋지 않은 일이 생기자마자 하나님께 내가 뭘 또 잘못했는지 따지고, 지체들을 향해 원망의 화살이 돌아가는 죄인의 실상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셨다.
고속도로에서 주님이 내게 허락해주신 이 일이 얼마나 기적과도 같은 일인지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바퀴가 빠졌는데 누가 이렇게 멀쩡히 돌아올 수 있을까.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그제야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다시 생각난 주님의 말씀. “네가 기적과 표적 없이는 도무지 나를 믿으려 하지 않는구나.” 자신의 병든 아들을 살려 달라고 간청하는 자에게 예수님은 “네 아들이 살아있다”(요 4:50)는 말씀 한마디로 그를 집에 돌려보내셨다. 그는 예수님의 이 한 마디 말만 믿고 돌아가던 중에 아들이 호전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그와 그의 온 집안은 주님을 믿게 된다. 내 앞에 펼쳐진 상황이 좋든, 좋지 않든, 나는 주님의 선하심만을 믿고 가면 되는 것이다. 가장 선하신 길로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이심을,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가면 된다.
기본적이지만, 내가 가장 놓치고 있었던 영역을 다시 짚어주시며 모든 은혜의 하나님 앞에 다시 서게 해주신다. 폭풍 속에서도 나를 붙드시는 내 생명 되신 주께 다시 한 번 내 삶을 아낌없이 드린다. 그러기에 너무나 합당한 나의 선하신 아버지니까. [복음기도신문]
백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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