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

[225호 / 뷰즈 인 아트]

렘브란트의 <엠마오의 저녁식사>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한다. 그는 같은 내용으로 여러 점을 그렸으나, 작품마다 조금씩 관점이 달랐으며, 가장 먼저 그려졌던 이 작품이 가장 독특하다. 주제는 잘 알려진 이야기인데, 두 제자가 엠마오로 가는 도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에 관한 얘기까지 나누었으나, 함께 저녁 식사를 할 때까지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얼마나 부활을 바랄 수 없었길래 이렇게까지 몰라본 것일까. 렘브란트의 관점도 이 부분과 관련이 있다. 그의 시선은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바랄 수 없었던’ 캄캄한 상황에 맞춰 있다. 이를 강조라도 하듯 작가는 예수님을 검은 실루엣으로 그렸다. 빛을 받아 부각된 인물은 깜짝 놀란 제자이다. 또한 성경에는 두 제자로 기록되었는데 다른 이는 보이지도 않고, 단지 멀리에서 무엇인가 찾고 있는 듯한 인물이 그 제자가 아닐까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바랄 수 없었던 어두운 심령에 비춰진 믿음의 빛

The supper at Emmaus *oil on paper on panel
*39 x 42 cm *circa 1628 *signed b.r.: R
(indistinct)

이처럼 어수선하고, 어둡고, 또 너무 함축적인 그의 그림은 의미를 한 번에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이 때문에 작가의 깊이 있는 생각이 전달된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누군들 예수님을 바로 알아볼 믿음을 가졌겠는가. 그렇지만 렘브란트는 못 알아본 행위를 변호하지는 않는다. 다만 믿음의 빛이 예수님으로부터 나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위대한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는 믿음이 결코 우리 본성에서 나올 수 없음을 설명했다. 정말 우리는 믿음보다 믿음 없음에 훨씬 더 익숙하다.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목격한 제자들은 절망과 슬픔, 두려움 때문에 믿음을 가질 수도, 사용할 수도 없었다. 그 상황은 마치 그림 속의 어둠과 같다. 그런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눈을 밝혀주신 분은 주님이셨다. 게다가 주님이 늘 함께 하셨다는 사실도 이때 알 수 있었다.

혹시 이런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예수님을 보았지만 검은 실루엣이 예수님인지 아닌지 여전히 의심이 들고 이 때문에 자책이 된다면, 그럼 믿음은 소멸된 것일까? 존스는 인간으로서 의심이 들 수 있다고 한다. 의심은 확신의 반대이지 믿음의 반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믿음은 나로 인해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음이 발휘되기 위해 분명 확신은 더욱 견고해져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믿음을 선물로 주신 아버지 앞에 우리가 무릎 꿇어야 할 이유기이도 하다. [복음기도신문]

이상윤 미술평론가

작품설명: 렘브란트 반 레인, <엠마오의 저녁식사>, 1629년, 나무판넬에 유채, 37.4 cm X 42.3 cm, Musée Jacquemart-André,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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