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손님들>은 빈민 목사로 알려진 이연호의 작품이다. 그는 1919년 황해도 안악에서 태어나, 일제 식민지 춘천고보(춘천고등보통학교) 재학시절 상록회 사건과 일본인 교사의 망언을 규탄하는 동맹휴학을 주동하여 옥고를 치렀다. 당시 그는 자기 그림 한 점을 학교에 걸었는데,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제목은 <소양정의 걸인들>이었다고 한다. <소양정의 걸인들>은 소실되었으나 증언에 비추어 볼 때, <왕의 손님들>의 모티브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왕의 손님들>의 구성은 전문교육을 받은 화가들 못지않게 탄탄하다. 가운데 세 명의 걸인이 중심을 이루며, 이 3인 구성은 지게꾼, 소년, 우산 든 남자의 좌측 3인과 우측의 대화하고 있는 두 사람, 앉아 있는 걸인에서 다시 반복된다. 3인 1조를 단순 반복하면 답답했을 텐데, 누구는 두 사람과 떨어져 있고 누구는 앉아 있는 식으로 변화를 준 것 역시 남다른 미적 감각을 보여준다. 전작 <소양정의 걸인>이 일제에 조국을 빼앗긴 것에 비통해하며, 한민족 모두가 ‘터전을 빼앗긴 걸인 신세’임을 가리키는 작품이었다면, <왕의 손님들>은 6.25 전쟁과 5.16 군사 정변에 대한 작가의 깊은 슬픔이 성서적 주제에 중첩된 것이다. 작품 아래에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기록되었다. 왕의 잔치에 초청된 ‘거리와 골목의 가난한 자들, 몸 불편한 자들, 맹인들, 저는 자들’에 대한 설명이다. 그들은 다름 아닌 이연호 목사가 평생 섬겼던 이들이었다. 소외된 사람들을 잔치에 데려오라고 한 왕의 명령에 순종한 종처럼, 그는 하나님의 손님을 섬기는 일에 자신의 삶을 바쳤다.
동냥 깡통, 남루한 옷차림, 목발을 짚은 구부정한 자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사람들의 무기력한 시선 등 <왕의 손님들>에 나타난 섬세한 표현은 이연호가 얼마나 근거리에서 이들과 함께했는지를 반증한다. 미국 유학까지 마친 그에게 유달리 기대했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그런 이연호를 미쳤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이연호 목사는 자작시에서 “아! (나는) 아직도 미치지 못하고 거지 동네 움집 구석 한 잎의 다다미 위에서 오늘도 떨고만 있습니다.”라며 부끄러워했다. [복음기도신문]
이상윤 미술평론가
그림설명: 이연호, <왕의 손님들>, 1962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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